2010년 8월 24일 회의연설

 

‘결정마디’라는 얘기가 있습니다. 개인이나 조직, 사회, 국가 모두 그러한 경험이 있을 것인데, 예를 들면 양복을 사러 가게 되었을 때 여러 가지 variety가 많다면 어느 것을 살지 망설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. 그러한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은, 어떻게 보면 축복이지만 어떻게 보면 결정에 어려움을 주는 부분도 꽤 있습니다.

자기 자신의 배우자를 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, 더군다나 자녀들의 학교 선택, 전공 선택 등등 이런 부분을 결정하거나 도움을 주고자 할 때, 사실 choice의 여지가 너무 많다면 결정을 내리기가 힘듭니다.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 일이냐 하면, 결정 자체는 우리가 선택을 하는 것이지만, 미래의 선택이자 자기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힘든 것입니다.

지금 우리 병원을 보자면 하드웨어는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. 어떻게 따져본다면 사실 없는 것이 없게끔 다 되어 있는 것입니다.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어떻게 strategy를 결정하여 나가느냐에 있어서 중요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.

우리가 모든 것을 결정할 때는 개인이나 국가도 마찬가지겠지만, 어떻게 하면 공동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, 어떻게 해야 목표와 부합하느냐, 우리의 목적과 맞느냐 이러한 것들이 base가 되어 우리의 미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. 물론 각 department, 각 부서마다 모두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,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.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그것이 극대화 될 수 있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. choice는 많고, strategy도 많습니다. 또한 어떠한 model을 따라갈 수도 있으나, 때로는 우리가 model을 만들어 가야하는 부분도 있습니다. 이것은 누군가 혼자서 할 일은 아니라, 모든 구성원들이 협력하여 아이디어를 내고, 그것을 종합하며,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 차례 발전해나가는 그런 과정을 갖추어 나가야 할 일입니다.

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하버드 대학 교수인 Michael Sandel 이라는 사람이, 사회정의는 무엇이냐 하여 한참 뉴스에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. 사실 사회정의라는 것을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. 어떻게 보면 사회정의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진행형으로 발전되어 가는 것이지, 한 번 결정하여 그것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.

사회 일부를 보자면, 우리가 ‘진보’나 ‘보수’라고 말하는 것들이 사실은 저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. 시민사회가 들어서면서 가장 큰 두 가지의 핵심적인 가치는 바로 ‘자유’와 ‘평등’이 아니겠습니까? 자유를 신봉하는 자들은 시장경제를 신봉하게 되고, 개인적인 자유를 극대화하려고 노력합니다. 또 평등을 신봉하는 자들은 복지를 ( ) 합니다. 그래서 복지지향주의냐 평등지향주의냐, 자유를 지향하느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. 그러나 반드시 평등을 지향한다고 하여 진보라고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. 진보는 어떻게 보면 activist입니다. 행동대라는 것은 진보세력에서도 나올 수 있고, 보수세력에서도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.

그래서 우리가 둘 중에 한 가지를 택하는 것 보다는, 평등하면서도 번영하는 사회. 그것이 아마 기본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. 이것은 사실 새로운 명제가 아니라, 예부터 말하는 소위 중용의 미덕이라는 것입니다. 모든 것이 극단으로 치우치면 어려운 것 아니겠습니까? 그래서 지금 새로운 발전을 앞둔 시점에서, 지혜를 모아 중용의 미덕을 극대화 하여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.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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